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로빈슨 카노 (문단 편집) == 프로 입단 전 == [[도미니카 공화국]] 산 페드로 데 마코리스에서 태어났고, 아버지인 [[호세 카노]] 역시 前 메이저리거로 활동한 야구 선수였다. 다만 그는 [[켄 그리피 시니어]]나 [[배리 본즈]]의 아버지 [[바비 본즈]] 같은 여타 메이저리거의 아버지들처럼 메이저리그 경력은 그렇게 화려하지 못해서 [[마이너리그]]를 전전하면서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통산 6경기 등판 1승 1패, 평균자책점 5.09의 초라한 성적을 기록하며 1990년을 끝으로 커리어를 마감했는데, 이후엔 [[대만]]으로 건너가서 현역 생활을 이어가다 1999년을 끝으로 은퇴했다. 그리고 야구선수였던 아버지의 이런 영향으로 카노도 미국에서 3년 동안 거주하면서 [[뉴저지]]에 있는 로컬학교를 다녔고 그 곳에서 [[뉴욕 양키스]]와 양키스의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버니 윌리엄스]]를 동경하게 되면서[* 그 때문에 마이너리그에선 [[버니 윌리엄스]]의 등번호인 51번을 달았다.] 양키스에 입단하겠다는 생각을 품고 야구 선수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 비슷한 경우로 고국 [[베네수엘라]]의 영웅이었던 프레디 가르시아를 동경해 다른 팀보다 적었던 계약금에도 불구하고 [[시애틀 매리너스]]에 입단한 [[펠릭스 에르난데스]]의 경우가 있다.] 영어 한마디 못하는 다른 중남미 유망주와는 달리 어릴 때를 미국에서 보내서 그런지 카노의 영어실력은 그럭저럭 괜찮은 편. 오른손잡이였던 그를 좌타석에 들어서게 하면서 오랜 시간 동안 타격폼을 교정해준것도 그의 아버지였고, 무엇보다 메이저리그 최초의 흑인 메이저리거였던 [[재키 로빈슨]]을 존경해서 아들의 이름도 로빈슨으로 지었다고.[* 참고로 카노의 등번호인 24번은 메이저리그 전체 [[영구결번/스포츠|영구결번]]인 [[재키 로빈슨]]의 등번호 [[42]]번을 뒤집은것이다. 사실 24번은 [[명예의 전당]] 헌액 멤버인 [[윌리 메이스]]의 등번호로 많은 강타자들이 선호하는 번호이기도 하다. [[리키 헨더슨]], [[배리 본즈]], [[켄 그리피 주니어]], [[매니 라미레즈]], [[그래디 사이즈모어]], [[미겔 카브레라]] 등이 24번을 달았거나 달고 있다.] 그리고 가족들이 미국에서 [[도미니카 공화국]]으로 다시 건너가자, 카노도 고국인 [[도미니카 공화국]]의 고등학교에서 농구팀과 야구팀에 입단하면서 기량을 쌓았고 고등학교 졸업 후, 2001년 국제 자유계약을 통해 10만 달러의 사이닝 보너스를 받고 [[뉴욕 양키스]]에 입단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